

SPACin(E)GG 스페이스 인 에그
이스터 에그 헌트에서 만난 해결사 루드빅과 생물학자 티아나. 두 사람은 그날 시간을 함께하게 된다.
이 이야기에 적합한 방식은 짧은 무대다.
무대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달걀이 잔뜩 놓여 있다.
모든 0은 하나의 달걀이자 우주로 기능한다.
01.
굴러오는 달걀을 줍는 두 사람.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.
루드빅: 계란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.
티아나: 오, 그렇죠. 조류도 양서류도 어류도 난생이니까요.
루드빅: 난 팬케이크, 스크램블에그, 에그 인 헬을 생각했는데.
티아나: (놀라움을 숨기지 못한다) 오우.
02.
굴러오는 달걀을 줍는 두 사람.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.
루드빅: 계란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.
티아나: 무엇이든요?
루드빅: 그래. 전 세계에 분포된 환상의 재료 중 하나지.
티아나: 아, 그쪽이었군요.
루드빅: 넌 어느 쪽인데?
티아나: 생명을 품은 알 쪽이요.
루드빅: 먹는 알도 그렇긴 해.
티아나: 그건 그렇네요.
03.
굴러오는 달걀을 줍는 두 사람.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.
루드빅: 계란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.
티아나: 뭐가 되었으면 좋겠는데요?
루드빅: 글쎄. 오늘은 오믈렛?
티아나: 저도 좋아해요. 오믈렛.
루드빅: 그거 플러팅이야?
04.
달걀을 들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.
루드빅: 오늘 저녁 오믈렛 좋은 것 같지 않아?
티아나: 이스터 에그는 삶은 걸 텐데요.
루드빅: 이거 가져가서 만들 거라고 생각했어?
티아나: 들고 말씀하시길래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네요.
루드빅: 근데 너 누구야?
티아나: 그쪽은요?
두 사람, 어이가 없어 웃는다.
05.
달걀을 들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.
루드빅: 오늘 저녁 오믈렛 좋은 것 같지 않아?
티아나: (흘깃 쳐다본다)
루드빅: (똑같이 쳐다본다)
티아나: ...왜요?
루드빅: 혼자 온 것 같길래.
티아나: 이런 데서 사람 사귀려는 사람 처음 봐서 놀랐네요.
두 사람, 어이가 없어 웃는다.
06.
두 사람, 어이가 없어 웃는다.
루드빅: 그러니까 내가 생물학자 앞에서 달걀을 들고 그렇게 물었다는 거야?
티아나: 네.
루드빅: 와, 정말 웃긴다. 어떻게 그 많은 동네 사람들 중 딱 생물학자가.
티아나: 생물학이 웃겨요?!
루드빅: 그렇게는 말 안 했어.
티아나: 그럼 제가 웃긴다고요?
07.
두 사람, 어이가 없어 웃는다.
루드빅: 그러니까 내가 생물학자 앞에서 달걀을 들고 그렇게 물었다는 거야?
티아나: 알고 그러시는 줄 알았네요.
루드빅: 너 유명해?
티아나: 학자가 유명해봐야 얼마나 유명하겠어요?
루드빅: 응, 초짜의 냄새가 나.
티아나: 그럼 루드빅 씨는 직업이?
루드빅: 해결사.
티아나: 그쪽에서 베테랑일 것 같네요, 태도를 보니.
08.
루드빅: 나는 해결사야.
티아나: 베테랑인가요?
루드빅: (자신 있게 끄덕인다)
티아나: 뭐든 해결해 주시나요?
루드빅: (더 자신 있게 끄덕인다)
티아나: 집에서 일어나는 문제도요?
루드빅: 아가씨, 빨리 말해봐. 기다리다 해 지겠어.
09.
의기양양한 루드빅과 존경하듯 바라보는 티아나.
티아나: 저 해결사 처음 봐요!
루드빅: 볼 일이 없는 게 좋긴 하지~
티아나: 정말 뭐든 해결해 주시나요?
루드빅: (자신 있게 끄덕인다)
티아나: 저희 집 계란 좀 처리해 주실 수 있어요?
루드빅: 뭐라고?
10.
의기양양한 루드빅과 존경하듯 바라보는 티아나.
루드빅: 아~ 그래서 내가, 그렇게 잡아냈다니까.
티아나: 영화처럼 들이닥쳐서요?!
루드빅: 장난 아니었지. 바닥을 굴렀다고.
티아나: 정말 멋져요. 저도 뭐 부탁하고 싶어요!
루드빅: 말해봐!
티아나: 저희 집 계란 좀 처리해 주세요!
루드빅: 그래!
루드빅: 응?
011.
계란을 고르는 루드빅.
루드빅: 으응~ 나 참, 이런 의뢰는 태어나서 처음 해보네.
티아나: 안전하고 좋지 않나요?
루드빅: 나 계란도 그렇게 안 좋아하거든.
티아나: 아닌 것 같은데... 그럼 이스터 에그 헌트에는 왜 오셨어요?
루드빅: 동심을 찾고 싶어서?
012.
계란을 고르는 루드빅.
루드빅: 나 참, 이런 의뢰는 태어나서 처음 해보네.
티아나: 안전하고 좋지 않나요?
루드빅: 나 계란 그렇게 안 좋아하거든.
티아나: 아닌 것 같은데... 그날 애들보다 더 신나게 들판을 돌아다니셨던 것 같은데요.
루드빅: 아니거든?
티아나: 아니긴 뭘요.
루드빅: 보물찾기 같은 거지.
013.
계란을 고르는 루드빅.
루드빅: 의뢰라고까지 말하니까 오긴 했지만 나 계란 그렇게 안 좋아해.
티아나: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말씀드렸는데...
루드빅: 아니거든?
티아나: 그런가요? 요리 얘기도 하시더니...
루드빅: 머리에 계란 맞은 적 있어서 싫어졌어.
티아나: 왜요?
루드빅: 애인 찾는 고객한테 너무 솔직하게 말했다가 봉변당했지.
014.
티아나: 그래도 머리에 맞은 게 계란이라 덜 아팠을 것 같아요.
루드빅: 참 고마운 말이네.
티아나: 어쨌든 원형이잖아요.
루드빅: 그래서 이스터 무늬 그리기 힘들잖아.
015.
티아나: 그래도 머리에 맞은 게 계란이라 덜 아팠을 것 같아요.
루드빅: 참 고마운 말이네.
티아나: 어쨌든 원형이잖아요. 좋은 형태예요.
루드빅이 계란을 깨는 동작을 한다.
루드빅: 톡.
루드빅: 그래서 깨기 쉽긴 해?
티아나: 생물 입장에서요. 포식자 말고.
016.
티아나: 계란은 원형이잖아요. 매우 유리한 형태예요.
루드빅이 계란을 깨는 동작을 한다.
루드빅: 톡.
루드빅: 그래서 깨기 쉽지.
017.
루드빅이 계란을 깨는 동작을 한다.
루드빅: 톡.
티아나: 계란은 포식자 말고 생물 입장에서 매우 유리한 형태예요.
루드빅: 어디 말해봐.
티아나: (신나서) 조류는 알이 원형인 게 효율 면에서도 유리해요. 질량이 같다면 구형이 다른 어떤 형태보다 부피가 작거든요. 즉, 알의 내용물인 노른자와 흰자 양이 같다면 동그란 알이 타원형 알보다 크기가 작아 더 쉽게 낳을 수 있어요. 표면적도 작아 암컷이 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도 덜 쓸 수 있답니다.
루드빅: (처음으로 당황한다) 응?
티아나: 그런데, 정확히는, 타원형이죠! 신기하게도요. 왜 타원형인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여기서 다른 연구가 물리학 마냥 '비대칭성'을 얘기해야 한다니까요,
루드빅: 잠깐! 잠깐!
티아나: 왜, 왜 그러세요? 진상 물리학자 고객이라도 만난 적 있어요?
루드빅: ...네가 이렇게까지 길게 말할 수 있는지 몰랐어.
018.
티아나: 계란은요, 정확히는, 타원형이죠! 신기하게도요. 왜 타원형인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여기서 물리학 마냥 비대칭성을 얘기해야 한다니까요,
루드빅: 뭐라고?
티아나: (체념한 듯) 네, 그냥 예뻐서 그렇게 됐어요.
루드빅: 그렇구나!
티아나: 하아...
019.
루드빅이 계란을 깨는 동작을 하고, 티아나는 옆에서 구경한다.
루드빅: 톡.
티아나: 와, 정말 모든 동작이 깔끔하네요.
루드빅: 요리도 예뻐야 하거든.
20.
루드빅이 계란을 깨는 동작을 하고, 티아나는 옆에서 구경한다.
루드빅: 톡. 톡. 톡.
티아나: 계란 깰 때 직접 입으로 소리를 같이 내시네요?
루드빅: 네가 무슨 소리 날 때마다 쳐다보길래.
티아나: 계란은 노른자 몇 개인지 보는 게 소소한 재미라서요...
루드빅: 어, 하나는 노른자가 아예 없는데?
021.
루드빅이 요리를 시작하고, 티아나는 옆에서 구경한다.
티아나: 계란은 노른자 몇 개인지 보는 게 소소한 재미지 않나요?
루드빅: 그렇네. 계란을 깼는데 삶은 계란인지 날계란인지 썩은 계란인지 불씨가 떨어질지 액체인지는 모른다?
티아나: ...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는데요. 그리고 어느 정도는 구별 가능하잖아요.
루드빅: 예리하네.
022.
루드빅이 요리를 시작하고, 티아나는 옆에서 구경한다.
티아나: 계란을 깨고 지켜보는 게 소소한 재미지 않나요?
루드빅: 그렇네. 계란을 깼는데 삶은 계란인지 날계란인지 썩은 계란인지 불씨가 떨어질지 액체인지는 모른다?
티아나: 전 그저 노른자 두 개가 나오면 놀랄 뿐이에요.
루드빅: 인간도 피부라는 껍질이 있어서 그 안에 당연히 기능을 하는 내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. 네가 딱 그렇게 말한 거야.
023.
루드빅이 자연스레 냉장고를 열어본다.
루드빅: 인간도 피부라는 껍질이 있어서 그 안에 당연히 기능을 하는 내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.
티아나: 그건 확실히 계란 같네요. 세포 그 자체나 웅크린 모습은 크게 다르지도 않죠.
루드빅: 응, 그것도 그렇고 네 냉장고에 없는 게 너무 많아서 놀랐네.
티아나: 죄송하게 됐네요.
024.
루드빅이 자연스레 냉장고를 열어본다.
루드빅: 인간도 피부라는 껍질이 있어서 그 안에 당연히 기능을 하는 내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.
티아나: 그건 확실히 계란 같네요.
루드빅: 너 그 알 모양 얘기 또 할 거야?
티아나: 아니거든요.
루드빅: 그럼 요리를 기다리면서 생각해 봐. 인간이 알에서 태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?
025.
루드빅이 자연스레 냉장고를 열어본다.
루드빅: 인간이 알에서 태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? 역시 태어나기 전에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서인가?
티아나: 그거 농담이죠?
루드빅: 인간은 좀 먹혀도 돼. 인간이 먹는 만큼의 균형을 맞춰야지 않겠어. (뒤적이다) 근데 너 정말 제대로 안 먹고 사는구나.
티아나: 되게 아무렇지 않게 말씀을 이어가시네요...
루드빅: 이렇게 계란이 많으니 모르는 사람 보고 처리해달라고 하지.
026.
냉장고를 함께 바라보는 두 사람.
루드빅: 그래서 왜 이리 처리해야 할 계란이 많은 건데?
티아나: 부모님이 실수로 너무 많이 주문했는지 갖다주셔서...
루드빅: 너 혼자면 이 계란들이 다 썩다 못해 그 안에서 하나의 우주가 창조될 때까지 방치되겠네.
티아나: 어떻게 그 정도 속도라고 확신해요?
루드빅: 냉장고는 주인의 정보를 생각보다 많이 담고 있답니다, 어리숙한 학자님. 부검 전의 내장 같은 거죠.
티아나: (뜸을 들이다) 기분이 좀 그렇네요.
027.
냉장고를 함께 바라보는 두 사람.
루드빅: 너 혼자면 이 계란들이 다 썩다 못해 그 안에서 하나의 우주가 창조될 때까지 방치되겠네.
티아나: 연구감이네요. 그럼 이렇게 내버려둘까요?
루드빅: 해결사 루드빅이 제안하는 해결법. 요리 연구를 하는 건 어때?
028.
부엌에서 두 사람은 이야기한다.
티아나: 그런데 계란을... 정말 많이 쓰시네요.
루드빅: 그런가?
티아나: 그런가? 라뇨. 30개는 깼어요. 계란 한 판을 다...
루드빅: 처리래서 이렇게 세 끼는 먹어야 할 줄 알았는데.
티아나: 준비 과정만 봐도, 이렇게 연속으로 계란은 못 먹어요...
루드빅: 내일 또 오라고?
029.
부엌에서 두 사람은 이야기한다.
티아나: 그런데 계란을... 정말 많이 쓰시네요.
루드빅: 그런가?
티아나: 그런가? 라뇨? 계란 한 판을 다... 우주 서른 개를 파괴하셨네요.
루드빅: 인간다운 행동이지.
음식이 완성되었다.
티아나: 그런데 이게 무슨 음식이에요?
30.
음식이 완성되었다.
티아나: 그런데 이게 뭐예요?
루드빅: 음- 네 집에 있던 걸로 손 가는 대로 만들었는데.
티아나: 그럼 신메뉴네요. 이름을 지어줘요.
루드빅: 무슨 이름까지. (고민도 하지 않고) 온갖 재료가 다 있으니까 에그 인 스페이스?
티아나: 계란이 메인이니까 스페이스 인 에그도 좋지 않아요? 아니다. 루드빅 씨가 창조주니까 그런 걸로 해요.
루드빅: 요리를 하고 창조주 소리를 듣네.
티아나는 멋쩍게 웃는다.
두 사람은 음식을 가운데 두고 앉는다. 끝.
참고/인용
- 닉 페인 희곡 <별무리>
- 우주알(Cosmic Egg)
- 계란 한 판은 30개.
- How eggs got their shapes
- Cracking the mystery of EGG SHAPE
Spacing, Egg, Space in Egg.
모든 0은 하나의 달걀이자 우주로 기능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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